초등학교 운동장 축구 금지 논란, 민원 공화국이 만든 학교의 자화상
최근 전국의 여러 초등학교 운동장 축구 금지 규칙이 시행되고 있다는 소식이 전해지며 온라인상에서 뜨거운 논란이 되고 있습니다. “아이들이 마음껏 뛰놀아야 할 운동장에서 왜 축구가 금지되었을까?”라는 대중의 질문에 학교는 침묵하거나 ‘안전’이라는 짧은 답변만을 내놓습니다. 하지만 그 침묵 뒤에는 현직 교사들만이 아는 처절한 갈등과 역사가 숨겨져 있습니다.

“북한 학생들은 운동장에서 자유롭게 뛰어놉니다”
10여 년 전, 제가 기간제 교사로 근무하던 시절의 일입니다. 통일 교육 시간, 남북한 학교의 공통점과 차이점을 비교하는 사진 자료를 보던 중 한 학생이 손을 들고 말했습니다. “선생님, 저 사진 속 북한 학생들은 운동장에서 축구하며 뛰어놀 수 있네요. 우리보다 자유로워 보여요.” 가장 통제된 나라로 꼽히는 북한의 심지어 교복을 입는 학생들을 보면서도 자유로워 보인다는 말에 안타까움을 금할 수가 없었습니다.
그 학교는 아파트 단지에 둘러싸인 이른바 ‘초품아’ 학교로, 인근 학부모들이 기를 쓰고 입학시키려는 소위 학군지였습니다. 하지만 화려한 겉모습과 달리 학교 안은 ‘민원’이라는 창살 없는 감옥과 같았습니다. 쉬는 시간 화장실 이용조차 층별로 엄격히 관리될 만큼 통제가 심했는데, 이는 아이들을 괴롭히기 위함이 아니라 쏟아지는 민원으로부터 학교를 지키기 위한 고육지책이었습니다. 그런데 이제는 전국적으로 이런 학교가 많이 생겼다니 더욱 안타까운 마음입니다.
금지 뒤에 쌓인 ‘민원과 송사’의 기록들
학교가 처음부터 운동장 축구 금지와 같은 극단적인 선택을 하지는 않았을 것입니다. 아마도 그 결정이 내려지기까지 수년간 다음과 같은 일들이 반복되었을 가능성이 큽니다.
- 학생 간의 권력 다툼: 축구를 하고 싶은 고학년과 공간을 빼앗긴 저학년 사이의 갈등, 그리고 “왜 우리 애는 운동장을 못 쓰게 하느냐”는 학부모의 항의.
- 소외감에 대한 민원: “축구를 못 하거나 싫어하는 아이들이 소외감을 느낀다”며 운동장 사용 종목 자체를 제한해달라는 역민원.
- 안전 책임의 사법화: 방과 후에 운동장에서 놀다 넘어진 아이의 부모가 학교를 상대로 치료비와 위자료를 청구하는 소송.
- 학교 폭력의 변질: 정글짐이나 미끄럼틀에서 발생한 사소한 장난조차 ‘고의성’을 따지며 교사에게 무한 책임을 묻는 사례들.
이런 사건들이 쌓이면 학교는 처음엔 ‘요일제’나 ‘학년제’ 같은 자구책을 내놓습니다. 하지만 그조차 민원을 막지 못하면 결국 ‘운동장 축구 금지’ 나 ‘운동장 폐쇄’라는 행정적 결단을 내리게 됩니다. 학교를 지탱하던 교육적 에너지가 ‘민원 방어’에 모두 소진된 결과입니다. 하지만, 학교 교사들도 이동하며 근무하기 때문에 ‘운동장 축구 금지’와 같은 행정적 결단에 대한 학교의 내러티브를 설명하기 힘들고, 학부모는 ‘행정 편의주의적 결과’ 라고 말 하게 되는 결과를 낳습니다.
현장체험학습 20%, 학교가 멈추는 이유
이는 단순히 운동장 사용에만 국한된 문제가 아닙니다. 최근 서울과 강원 등지에서 현장체험학습(소풍)을 진행하는 학교가 20%대에 불과하다는 충격적인 통계가 있었습니다. 과거 강원에서 일어난 버스 사고로 학생이 사망하자, 인솔 중이던 교사에게 업무상 과실치사 책임을 물었기 때문입니다.
부모와 여행을 가도 예기치 못한 사고는 발생합니다. 그런데 수십 명의 아이를 인솔하며 24시간 긴장 속에 지내는 교사에게 “사고가 났으니 당신의 밥줄(면허)을 끊겠다”고 압박한다면, 어느 누가 자신 있게 소풍을 가겠다고 나설 수 있을까요? 저 역시 아이들의 추억을 위해 제 인생 전체를 걸 모험을 하고 싶지는 않습니다.
‘건강한 좌절’과 회복탄력성의 상실
지금 제 곁에서 8개월 된 저희 아기가 열심히 기어 다니고 있습니다. 아기는 엄마의 몸이나 쿠션 같은 장애물을 만나면 넘으려 시도하다 고꾸라지기도 하고, 뜻대로 되지 않아 짜증을 내기도 합니다. 하지만 아이는 포기하지 않습니다. 넘어져 보아야 일어서는 법을 배우고, 장애물을 만나야 극복하는 근육이 생기기 때문입니다.
학교는 이러한 ‘건강한 좌절’을 경험하는 안전한 실험실이어야 합니다. 하지만 오늘날의 학교는 학생의 몸에 털끝 하나 닿지 못하게 하면서도, 사고가 나면 교사가 배상 책임을 져야 하는 기묘한 구조 속에 놓여 있습니다. 교실에서는 조각도를 쓰는 판화 수업이 사라지고, 불을 쓰는 요리 수업이 멈췄습니다. 심지어 승패가 갈리는 운동 경기조차 하지 않습니다. 아이들이 마음이 다칠까 봐, 그리고 그 화살이 교사에게 돌아올까 봐 두렵기 때문입니다.
결론: 무한 책임을 내려놓아야 학교가 산다
아이들을 유리 온실 속에 가두는 것이 진정한 보호일까요? 남 탓을 하며 원망의 대상을 찾는 문화 속에서 아이들은 ‘회복탄력성’을 배울 기회를 잃어갑니다. 학교가 다시 숨 쉬기 위해서는 교사에게 지워진 ‘무한 책임’의 굴레를 사회가 함께 나누어 가져야 합니다.
사고의 책임을 교사 개인에게 묻기보다, 학교라는 시스템 안에서 일어난 일을 제도적으로 보호할 때 비로소 교사는 조각도를 다시 들고, 아이들은 운동장에서 마음껏 공을 찰 수 있을 것입니다. 아이들의 마음의 내구도를 올리는 교육, 그것이 지금 우리에게 가장 필요한 ‘진짜 교육’입니다.
같이 읽으면 좋은 글
학교에서의 건강한 좌절과 스캐폴딩(Scaffolding)의 중요성에 대해서는 [비고츠키의 사회적 구성주의와 비계 설정] 포스팅에서 더 자세히 다루었습니다.
#초등학교축구금지, #학교민원, #현직교사칼럼, #현장체험학습취소, #회복탄력성